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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oaching

대표작 '절규'의 뭉크 회고전을 세번째 관람하고 그려 보며(+뭉크의 재해석,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리뷰24.05.25)

by 재클린전 2024. 5. 26.

 

24년5월22일 수요일부터  주1회 서양화 배우기를 시작했습니다.서양화를  배우는 이유는 아트코치 자격과정을 진행하여 아트코치 양성을 3기까지 배출하고서 추가 비즈니스로 아트딜러를 시작해서이기도 합니다.  고호와 동생 테오부부가 했던 직업이 아트 딜러이기도 합니다. 그림을 그려 보고 배우는 동안 제가 강의하는 12명의  화가를 더 이해하는 시간이 될 것이기에 시작하였습니다. 새 주에는 미술 심리상담사 2급도 8주차(24시간)로 화.목 오후에  3시간씩 공부를 하게 되었고요. 오늘은 스케치를 반복해서 연습해 봅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화가 마리로랑생의 '자화상'과 뭉크의' 절규'를 스케치해보았습니다. 저는 밝은 파스텔 톤의 그림을 좋아하고 그리기도 그렇군요! 저의 내면 표현의 표출이기도 합니다. 

긴 대기 줄에서 사진을 '찰칵'부탁하여 남길수 있던 순간(전시는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혼자 다닙니다)

뭉크는  내면의  불안한  자신의 증상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낸 표현주의 화가입니다. 제 사진 뒤 뭉크의 '절규'는 가장 많이 팔린 인기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뭉크와 일대기

세기말적인 우울한 시대의 표현으로 명성이 올라간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뭉크는 1863년 의사인 크리스티안 뭉크와 어린 아내 라우라 비윌스타드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의사로  경제적으로 풍족하지않던 삶 때문에  뭉크의 가족은 자주 이사를 다녔으며 오슬로에 정착합니다. 다섯명의 형제중에 소피에가 첫째이고 뭉크는 둘째였습니다.뭉크가 다섯살 일 때 전국적인 결핵 발병으로  어머니는 30살에 결핵으로 사망을 합니다.그리고 나서  누나는 15살에 결핵으로 일찍 죽음으로 해서 <병든 아이>의 모델로 추정합니다. 뭉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불안으로 예민했고 '절규'를 그릴 때는 공황장애적인 표현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  양육을 하며 잠자기전에 공포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습니다. 뭉크는 이후 아버지의 기억을 이러한 비극에 대하여 지나치게 경건주의로 다음과 같이 회상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광기(광기의 경계에 있는 신경과민) 의 경계에 다다를 수 있는 선천적인 신경과민을 갖었다. 내가 물려받은  것 또한 이 지독한 신경과민이다.   - 뭉크,영혼의 시 도록 37P-

영상은 허세미술관을 참고하여 뭉크의 사랑 세 여인을 공개하겠습니다. 첫번째 사랑한 여성은 밀리 로우로프입니다.그녀는 결혼한 여성이였습니다. 연인 밀리 로우로프 결혼은 다른 사람하고 뭉크의 첫사랑은  실연으로 끝납니다.

두번째 사랑한 여인은 다그니 유엘입니다. 사랑은  뭉크의 친구와 삼각 관계였습니다.이 사랑경험은 '마돈나' 주제의 그림이 탄생했습니다. 

뭉크의 세번째 사랑입니다. 툴라 라르센은 뭉크에게 스토커 짓을 했습니다. 뭉크는 총을 쏘려는 툴라 라르센을   말리다가 손이 절단이 되었습니다. 툴라 라르센과의의 사랑에서는 <마라의 죽음 >작품이 탄생합니다.뭉크는 이 일로 알콜 중독이 되고  8개월의 요양치료를 받습니다.툴라 라르센은 뭉크가 폐인이 되니 떠났습니다. 

뭉크는"'자연은 예술이 그 자양분을 얻는 영원하고 위대한 원천이다"라고 했는데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자연풍경으로 명화가 되기도 하고 자연색을 창작 색감으로  예술성이 높은 작품으로 재탄생이 되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회의 도록은 279쪽으로 도록중에 페이지 수가 많고 방대한 그림의 정리를 보기 좋게 잘 정리해두어 읽기가 좋습니다. 뭉크의 삶을 들여다보고, 동시에 인간의 내면을 솔직하게 표현하여 작품으로 승화시킨 그의 예술을 향한 열정을 살펴볼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습니다. 거장의 손 끝에서  발현되는 인간의 삶, 그 안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개척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겸허한 자세는 진정한 예술가의 자세와 사명이 무엇인지 되새기게 된 전시회였습니다.   

 

첫번째,뭉크의 그림 관람은 2006년 8월3일자였네요. 지금으로 부터 18년전에 제가 뭉크 전을 만났어요. 펠리시앙 롭스와 공동 전시회여서  아쉬움이 있었던 전시였죠. 뭉크(1863~1944) 자신의 삶과 내면세계의 표출을 예술세계 예술 창조의 근본으로 삼음으로써 표현주의의 한 근원을 이룬 화가입니다.   그의 작품속에서 우리는 작은 우주를 느끼고, 삶의 이면을 발견하게 되는데 죽음,고통,슬픔은 작품으로 승화되어 보는 이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그의 판화에서 유화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느낌을 갖을 수 있어요.-2006년 8월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뭉크의 한국의 첫 전시회의 후원자는 트랜스페트롤재단의 토마스 갈디 대표이다. 트랜스페트롤재단의 임무는 사회복지프로그램과 미술을 후원하는 것이다.  

미술 애호가는 자신이 본 것에 의해 감동받고 싶어 한다.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롭스와 뭉크가 묘사한 여성 이미지에서 자연스럽게 여성과 남성의 관계가 떠올랐다.   그것은 영원하고도 보편적인 주제로 생사,선악,열정과 운명을 극복하는 이성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다.

2014년 7월3일 뭉크의 두번째 전시회를 보았다.  뭉크전 만으로는 국내 최초의 전시였다. 전시 제목은' 영혼의 시'전이였다. 프로이드는 억압된 무의식을  꿈.사상으로 두단계 표상 은유와 환유,혹은 압축과 전치는 꿈을 해석하는 두 단계 문학과 모든 예술과 언의의 비유체계이다. '모든 예술 작품은 유아기의 소망이 포기되지않고 사회의 금기를 피하기 위한 장치,미학은 사회가 금기한 쾌락,증오,악,육체,성을 포함하면서 그것을 보편적 윤리로 승화시키는 작업,무의식이 그 이전의 윤리나 미학과 다른 점은   바로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한 쾌락을 포기하지 않는다. '는 가설이 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면 행복해진다는 전통윤리와는 다르다.

2015년6월16일 매일경제 이향휘 기자 글 참조

인간은 외부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 때 불안은 극대화된다.   뭉크가 친구들과 산책을 나갔을 때 갑자기 하늘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때 뭉크는 피로를 느껴 난간에 기대었다. 핏빛과 불의 혓바닥이 검푸른 협만과 도시를 뒤엎고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었지만 뭉크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때 뭉크는 자연을 관통하는 절규를 들었다. 이것은 1892년 뭉크는 병중에 끄적였던 메모이다. 이 메모가 1910년<절규>의 탄생을 낳았다.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난간에  한 남자가 서있었다.그는 두 귀를 가린 채 울부짖는다. 하늘은 붉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다.(나라면 노을이 아름답다고 하며 연신 감동하면서 사진을 찍어서 좋아 할 지인에게 퍼날를텐데 말이다.)   그 절규가 화폭을 뚫고  관람객의 귓가를 때린다.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과 공포를 이처럼 명징하게 표현한 화가가 있었던가? 예술가 만큼 시대의 불안을 민감하게  감지하는 존재가 있던가? 개인적으로도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삶을 사는 예술가들은 시대의 균열과 상처에 가장 먼저 반응하고 표현한다.

 

46세에 경제적인 부를 이으킨 뭉크의 차별점-1863년 노르웨이 뢰텐에서 태어난다. 이듬해 크리스티아니아(전오슬로)로 이주했다.

 

동시대에 고호와 뭉크의 성장속도는 달랐다. 뭉크는1909년  46세에 노르웨이에 귀국하여 몇년간 크리스티아니아피오르에 여러 채의 대저택을  구입하고   야외에 작업실을 마련한다. 1916년 53세에는 크리스티아니아 근처에케리 부지를 구입하여 영구 거주한다. 1890년대 중반 뭉크는 1885년부터 크리스티아니아에서 관계를 유지해온 보헤미안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이 등장하는 단체 초상화를 그렸다. 세기가 바뀐 후 뭉크 후원자,친구,수집가들로부터 점점 더 많은 커미션을 받았으며,초상화는 그에게 중요한 수입원이 되었다. 뭉크는 헨리크입센을 포함한 여러 현대 작가의 정신에 따라 표면을 관통하고 피사체의 성격과 숨겨진 인간성을 분석하려는 시도를 통해 표현적인 초상화를 만들었다. 고호는 생존해 있을 때  400점의 위대한 명작을 그렸지만 붉은 포도밭이라는 작품 한점이 1,000,000에 판매됐을 때이다.    

전문코치의 TIP

섹스피어의  '리어왕'에서는 역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를 1막4장에 이렇게 남겼다. "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던 리어왕은 광기에 휩싸여 죽음에 이른다. 인간이 불안과 절규에 허덕이는 근저는 모두 나 자신의 실체를 알 수 없다는 것에 있다. 더구나 외부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 때 불안은 극대화한다. 어이없는 실수가 반복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절망이자 공포가 아닐까? 어떤 재난이 찾아온다 해도 그것에 대담하게 이성적으로 맞설 수 있는 멘탈코칭의 준비를 <절규>를 통하여 객관화하고 셀프 코칭하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누구인지?"안다는 것은 자기자신의 가치철학 신념이 분명한 <존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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