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AFP=연합뉴스) 노르웨이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1863~1944)의 대표작인 `절규(The Scream·1895년작)'가 2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소더비 경매에서 1억1천990만달러(약 1천355억원)에 낙찰돼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다.
이날 저녁 경매에 나온 '절규'는 입찰자 7명의 열띤 경쟁 속에 12분 만에 낙찰됐다. 이 낙찰가는 구매자의 보험료까지 포함한 것이다.
앞서 세계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최고액으로 낙찰된 작품은 지난 2010년 5월에 이뤄진 파블로 피카소의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Nude, Green Leaves and Bust)'으로 1억650만달러에 팔렸다.
경매는 5천만달러에서 시작됐지만 곧바로 전화로 경매에 참여한 두 명이 남아 최종 경쟁을 벌였다.
경매 참가자 중에는 중국어와 영어 및 노르웨이어 구사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낙찰자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카타르 왕족이 작품에 관심을 보였다는 설도 나오고 있다.
경매가 시작되자마자 입찰가가 금세 올라 9천900만달러에 달하자 청중들은 숨을 죽였고 1억달러를 넘어서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작품은 노르웨이 사업가 페테르 올센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절규'의 주요 4가지 버전 가운데 유일하게 민간인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다.
현재 절규의 4가지 버전 가운데 나머지 3개는 노르웨이 박물관들이 소장하고 있다. 소더비 측은 그러나 지난 1895년 파스텔로 그린 이번 경매 작품이 가장 색이 화려하고 강렬하다고 자랑했다.
소더비의 사이먼 쇼 선임 부회장은 "개인이 소유한 작품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이 작품은 또 뭉크가 절규 시리즈를 그리는 과정의 영감을 기록한 시(詩)가 프레임에 적혀 있는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 시에는 "나는 두 친구와 함께 오솔길을 걷고 있다. 해가 지면서 하늘이 갑자기 붉게 물들었다. 잠시 멈추고, 피로가 몰려오는 것을 느낀다. 펜스에 기댄다. 피오르드와 도시 너머로 불타는 혀와 피가 보인다"라고 적혀 있다.
절규의 4가지 버전 중 두 가지는 지난 1994년과 2004년에 도난당했으나 나중에 다시 회수됐다.
이번 경매에 나온 작품의 소장가 올센의 부친은 뭉크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다. 소유자인 올센은 선박회사 상속인 겸 기업인으로 경매 수익금으로 노르웨이에 새 박물관과 미술관, 호텔 등을 건립하는 기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올센은 올해 초 "평생 이 작품을 간직하며 살아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작품의 파워와 에너지는 강해졌다"면서 "이에 따라 이 뛰어난 예술작품을 세상 사람들이 소유하고, 감상할 기회를 줄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매각 방침을 밝힌바 있다.
아트 컨설팅 서비스 회사 프람의 마이클 프람은 "뭉크의 '절규'는 모나리자와 함께 미술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이미지"라고 평가했다.
ash@yna.co.kr
https://m.yna.co.kr/view/AKR20120503083700009
뭉크의 `절규' 1억2천만달러 최고가 낙찰(종합) | 연합뉴스
(뉴욕 AFP=연합뉴스) 노르웨이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1863~1944)의 대표작인 `절규(The Scream·1895년작)'가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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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를 어떻게 알고 있나요?
피카소와 더불어 현대미술의 밑걸음을 깐 화가.뭉크는 왜 악평에 시달려야 했을 까요? 20,000점의 그림을 그렸다. 평생 죽음과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크리스티안 뭉크(아버지)죽은 어머니와 아이-어린 아이가 느끼는 절망과 아픔-죽음에 잠식당한 아이의 감정,뭉크 자신의 감정표현.어머니의 죽음으로 아버지가 달라졌고 아버지는 루터 종교에 빠진다.
Q: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기이했던 양육 방법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아버지가 밤마다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고 공포 소설을 읽어 주면서 두려움에 떨게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꾸짖기까지 했다. 정서적인 학대가 큰아버지였다. 삶과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공포에 살았다고 뭉크는 말했다.
첫 개인전
소피의 죽음-뭉크 가족에 영향을 미친다. 뭉크의 여동생라우라는 조현병증세로 정신과치료를 받는다. 다움에 죽게될 사람이 뭉크,나이겠구나!카랜 이모가 그림을 그려서 팔기도 했다. 1881년왕립미술학교에 입학했다. 자유 드로잉 분야에서 1등도 한다. 25살에 첫 개인전을 열고 장학금으로 파리로 유학을 갑니다.
악마의 화가로 불린 뭉크,노르웨이의 대표 화가가 된다.후기인상주의-인간의 내면 세계나 갈등을 그림다.고갱.세잔.반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에(9년간 그림을 그린 고호는 내면 세계와 감정을 그린 그림)뭉크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자기 자신의 그림.파리에서 3년간 유학을 하며 고호에게 영향을 받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자살 충동을 일으킨다. 그리고 온갖 강박에 시달렸다. 카페에서 사사들을 바로쳐다 보지도 못했다.가족과 나무에서는 뭉크는 죽음을 염두에 두는 그림을 그린다. 내면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화가가 되기로 한다. 55점을 베를린에서 개인전을 연다. <뭉크스캔들>이다라고 했다.
절규에 박혀있는 <미친 사람만이 그릴 수 있다>는 뭉크가 직접 쓴 글로 밝혀졌다.
옌스티스-노르웨이 국왕에서 기사 작위를 받는다. 오슬로대학100주년 벽화의 공모를 받는다-<태양>작품이다. 노르웨이에서 국민들은 절규보다 태양을 더 좋아한다. 정신질환을 에술의 운동력으로 삼다.1912년 분리파의 전시회를 연다. 유일한 생존화가로 32작품의 작품을 선보인다. 오슬로에켈리에서 그림을 그린다. 1937년 이사람의 조롱을 받으면서 인생의 회오리에 휩싸인다 누구인가? 히틀러였다.히틀러는 이와 같은 말로 예수가들을 억압한다. 표현주의의 음악이 퇴폐적이라며 억압한다. 현대미술가들을 조롱한다.압수한 17,000의 그림에서 4,000점의 그림을 소각한다. 2,000점은 해외로 팔려나간다. 뭉크의 작품도 82점이 압수된다. 뭉크는 오슬로시에 물건과 작품을 기증하겠다는 유서를 작성한다.28,000여점의 뭉크의 그림이 오슬로 박물관에 기증이 되었다.
49살에 표현주의 거장으로 떠오르다
<환상><우울><여름밤의 신비>-악령이 들린 그림이다. 지옥의 그림이다. 미술이 위험에 뻐졌다. 습작이 아니라 졸작이다등의 혹평을 받았다. 아카데미 화풍(사실적인 그림을 그렸다.&부르주아 화풍의 충돌이기도 했다. 뭉크의 전시회는 일주일만에 중단이 되었다. "제게 일어난 최고의 광고였어요."젊은 화가들은 제 그림을 아주 좋아해요. 베를린 분리파가 만들어졌다. 다시 열은 베를린 전시회에서는 전시회가 인기폭발한다. 뭉크는 표현주의의 대표화가가 된다.1893년<생의 프리즈>를 그리게 된다. 삶의 다양한 형태를 시리즈로 그렸다.
그때의 뭉크는 공황발작의 상황이었다고 추측한다. 두통.어지러움,현기증을 평상시에도 겪고 있었다.<절규>"뭉크는 미치고 타락한 그림이다"<절규>의 영감이 되었던 에케베르크의 언덕 절망,절규,절망그림이 이 언덕을 그렸다. 왜 그렇게 에케베르크 언덕을 그렸을까? 이곳에서 어머니,소피,아버지의 장례가 치러진 곳이다. 이 언덕을 강박적으로 뭉크가 그림을 그렸다. 100년이 숨겨진 낙서가 <절규>에서 발견되었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정신병이 화가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화가에게는 원동력이 되었다.뭉크의 구원이 된 그림 내가 깊은 절망에 빠져있는 상태에서도 그림을그리고 있으며 마음을 진정시키는 평화가 나를 감싸곤 했다. 그림이 없었다면 나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뭉크는고통을 자양분 삼아 자신의 길을 계속 개척해갔다.
창조와 사랑-살아남은 자의 예술(그림)치유와 성장
뭉크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런 순간이었던 누나의 임종 장면을 직접 목격하며 겪은 고통과 속죄의식을 예술을 통해 치유하고자 했다. 1885년부터 1926년까지 40여년 동안 유화, 석판화, 목판화,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사용해 같은 주제를 반복적으로 탐구하고 해석하며 수많은 연구를 진행했다. ‘병든 아이’는 뭉크의 예술적 성장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작품이며, 그의 예술의 핵심을 담고 있다. 뭉크는 “‘병든 아이’와 함께 나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것은 내 예술의 돌파구였다. 나의 작품 대부분이 이 이미지에서 탄생했다”라고 썼다. ‘병든 아이’ 연작 중 하나인 이 그림은 소피가 임종 순간에 겪었던 죽음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개를 떨군 채 두 손으로 조카의 손을 꼭 잡고 오열하는 이모 카렌의 모습은 인간적인 절망감과 무력감을 보여 준다. 뭉크에게 누나의 죽음을 그리는 작업은 상실의 아픔을 직면하고 치유하는 방법이었다.
그는 ‘병든 아이’ 연작을 통해 개인적인 비극을 보편적인 인간 경험으로 승화시켰다. 이는 그의 예술적 성장과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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