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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일류'유훈 남긴 이건희CEO의 통찰(+35년李회장 보좌한 윤종용 전 삼성전자부회장)

by 재클린전 2021. 10. 25.

故이건희 회장 1주기 추모 인터뷰

사진설명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진행된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35년간 함께 일했던 고(故)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경영 정수를 회고하고 있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한 지 오는 25일로 1년이 된다. 1987년 아버지인 고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별세로 삼성그룹을 맡게 된 그는 1993년 신경영 선언과 이어진 디지털경영, 디자인경영 등을 통해 오늘의 삼성을 만들어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회장 생전에 가장 지근거리에서 일한 사람으로는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77)이 꼽힌다. 1966년 삼성그룹에 입사한 그는 1969년 삼성전자 창립멤버로 시작해 2008년 퇴임할 때까지 삼성전자를 키워낸 국내 전자 산업의 산증인이다. 삼성에서 일한 42년 가운데 35년을 이 회장과 손발을 맞춘 그는 이 회장이 생전 펼쳤던 경영철학의 핵심을 꿰뚫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회장이 남긴 유산을 되돌아보고 한국 경제와 제조업이 나아갈 길에 대한 조언을 듣기 위해 윤 전 부회장의 사무실을 찾았다. 윤 전 부회장은 1995년 이 회장이 중국 베이징 한국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일갈했던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는 말을 꺼내며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정치는 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당시에도 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가 많았고, 정책도 반기업적이었는데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죽비 소리'다. 윤 전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 삼성그룹 식구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며 "계속해서 활동하셨으면 최근 진행되는 (삼성의 사법 리스크 등)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

 


―이건희 회장 1주기를 맞는 심정은.

▷이 회장 주변에서 오랜 기간 같이 일했기 때문에 과거의 희비애락이 너무도 되새겨지는 시간이다. 이 회장은 다방면으로 호기심이 많았고 집념, 열정, 통찰력이 뛰어났다. 이 회장이 두 살 연상에 불과하지만 업무 외에는 대화가 안 될 정도로 안목이 남달랐다. 1970년대 말 삼성전자 도쿄지점장으로 근무할 때 이 회장이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일본에 출장을 왔다. 출장을 와서는 저녁 때 도쿄 오쿠라 호텔로 불러 반도체, PC, VTR 등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했다. 당시 우리나라 전자 기술이 일본과 큰 격차가 났는데, 이 회장은 출장 때마다 일본 기술을 많이 배우고 일본 기술자와 고문을 많이 채용해 우리 것으로 만들라는 지시를 했다. 당시 노력이 지금의 삼성전자를 만든 초석이 됐다고 생각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 회장의 말은.

▷이 회장은 삼성 경영진에게 "당신이 하는 사업(業)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했다. 각자가 맡고 있는 업의 개념과 핵심 경쟁력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에 맞게 일하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1980~1990년대 고금리 시기에 이 회장은 백화점 사업의 본질을 임대업으로 보기도 했다. 업의 본질을 꿰뚫는 이 회장은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하는 사람이었다. '사물의 기본 이치를 연구해 사물을 꿰뚫어보며 지혜를 다듬어간다'는 뜻인데 이 회장을 수식하는 최고의 단어라고 생각한다.

―1993년 신경영 선언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 회장이 1987년 삼성을 맡은 이후 같이 국내외 사업장을 다녔다. 그 당시 이 회장이 가장 불만을 가졌던 것은 '현실에 안주하는 태도'였다. 세탁기 뚜껑의 부품이 맞지 않아 칼로 깎아서 맞추는 것을 보고 대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신경영 선언의 핵심은 변화와 혁신이다. 변화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이 회장이 "처자식 빼고는 다 바꿔라"라는 극단적인 얘기까지 한 것은 그 정도로 삼성의 문제가 심각했고 변화가 절실하다는 간절함을 보여준 것이다.

―신경영 선언 후 비약적 발전을 돌아본다면.

▷이 회장은 평소에도 직원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신경영 선언을 하면서 경영진에게 그룹 이익이 1조원을 넘으면 직원들 월급을 지금보다 두 배로 올려주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다들 어안이 벙벙했다. 당시 세전이익이 6000억원에도 못 미쳐 조(兆) 단위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 상상이 안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1조원은 금세 달성했고 지금은 삼성전자 한 곳의 영업이익만 4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시대가 됐다. 성과에 대한 보상도 당연히 이뤄졌다. 직원에 대한 처우는 삼성이 대한민국 톱클래스라고 생각한다.

―이 회장이 참고서로 삼았던 일본을 삼성이 넘어섰는데.

▷지난해 삼성전자의 매출은 236조원, 영업이익은 36조원을 기록했다. 유럽 지멘스나 미국 HP, 일본 소니 등을 제치고 삼성전자가 전기전자 업종에서 매출 1위가 된 것이 2000년대 중반이다. 이 순위를 지키기 위해 이 회장이 '초일류'를 선언한 것이고, 지금까지 단순한 1등을 넘어 압도적인 1등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이 회장이 떠나면서 다양한 사회공헌을 했다.

▷이 회장은 평소에도 사회를 이끌어가는 기업을 꿈꿨다. 기업이 많은 이익을 내서 세금도 많이 내는 것, 이익의 일부를 사회와 함께 공유하는 것은 이 회장의 기본 철학이다. 사람들이 이번에 이 회장의 미술품 2만3000점이 기증된 데에만 관심이 많은데, 생전에도 그는 재단 등을 설립해 우수 인재를 양성하고 다양한 형태의 기부금을 내왔다. 최근 삼성장학회(삼성이건희장학재단)가 활동을 중단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쉬움이 일기도 했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1944년 경북 영천 출생 △1966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1966년 삼성그룹 입사 △1977년 삼성전자 도쿄지점장 △1980년 삼성전자 TV사업부장 △1985년 삼성종합연구소장 △1992년 삼성전자 가전부문 사장 △1992년 삼성전기 사장 △1994년 삼성전관 사장 △1995년 삼성그룹 일본본사 사장 △1997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2000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2008년 삼성전자 상임고문

"반도체는 타이밍이 중요…기업인이 영웅 대접 받아야"

최적의 시기에 과감한 투자로 타이밍 지킨게 삼성 성공비결

기초과학 R&D 지속 확대하고정부 나서서 기업우대 해줬으면

◆ 故이건희 회장 1주기 추모 인터뷰 ◆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최대 치적으로는 세계 초일류 반도체 산업을 육성한 것이 꼽힌다. 반도체 산업 진출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1983년 시작했지만 한국이 세계를 호령하는 반도체 강국이 되기까지 이건희 회장의 뚝심 있는 지원과 투자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 회장은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타이밍(Timing)'으로 봤다"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 경쟁력은 어디서 오나.

 


▷반도체의 기본 경쟁력은 우수한 인재 확보와 기술력, 자본력이다. 하지만 시장 경쟁력 측면에서 본다면 '타이밍'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적당한 시기에 투자를 단행해서 시장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트랙에서 장거리 달리기를 할 때 직선 주로에서는 안쪽 자리를 뺏기 힘들다. 코너를 돌 때가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코너에서 추월하겠다고 무턱대고 속도를 냈다가는 본인이 이탈하거나 다른 사람과 충돌해 실격당할 우려도 있다. 즉 어떤 시간에 어떤 인재와 함께 어떻게 투자를 해서 사업을 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타이밍이다. 삼성이 반도체에서 지금의 위상을 갖게 된 것은 타이밍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위기를 기업들이 힘겹게 극복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위상은 세계 10대 경제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미래지향적으로 규제를 풀고 기업이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특히 연구개발(R&D)과 인재 육성, 사회 인프라스트럭처 등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이를 통해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사회가 기업을 성장할 수 있도록 보호해주고, 기업인들 사기를 올려주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다. 최근 삼성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도 기업인을 우대하는 사회 분위기에서는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다. 기업인들이 영웅이 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코로나 이후 우리 경제의 변화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가.

▷돈의 가치가 크게 변했다. 과거 브라운관 TV는 299달러를 넘으면 가격이 비싸서 판매하기 어려웠다. 이것이 평면 TV가 등장하면서 1000달러 이상으로 가격이 뛰었고,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됐다. 최근에는 테슬라 전기차가 등장하며 전반적인 차량 가격의 상승을 이끌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돈의 가치가 달라졌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준비를 꾸준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포스트 코로나 준비는 어떻게 하나.

▷변화의 상당 부분은 과학이나 공학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기초과학 분야에 많이 투자하고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 또 그간 진행된 산업혁명은 에너지혁명이었다. 3차 산업혁명은 아직 진행 중이다. 3차의 경우 탈탄소 등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노력이 중요해진다. 이때 오히려 빛을 볼 에너지가 원자력이다. 지금처럼 탈원전을 외치는 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일 수 있다.

그는 끊임없는 변화를 부르짖은 ‘경영혁신 전도사’였다. 디지털 시대에는 사람을 키워 미래를 ‘예측’하는 게 아니라 ‘창조’해야 한다고도 역설했다.

CEO 윤종용이 삼성에 남긴 것

삼성전자의 ‘대표 얼굴’이 바뀌었다. 12년 만이다. 윤종용 삼성전자 총괄대표이사 부회장은 “42년 삼성은 내 인생 모든 것이자 그 자체였다”라는 이임사를 남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상임고문으로서 앞으로 신임 이윤우 부회장 체제가 순항하도록 ‘조언자’ 구실을 하게 된다.

 

윤 상임고문이 스스로 밝힌 사퇴 배경은 ‘위로부터의 변화가 필요해서’이다. 2년여 전부터 후진 양성을 위해 퇴진을 생각해왔다는 그는 삼성전자가 근본적으로 혁신하기 위해서는 위로부터의 변화가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해 용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인용 삼성전자 홍보팀장(전무)에 따르면, 윤 고문은 회사가 간곡하게 만류했지만 사의를 접지 않았다.

그의 퇴진에는 ‘자의’가 작용한 것이 분명해 보이지만 ‘타의’ 또한 끼어든 흔적이 적지 않다. 2년여 전부터 교체설이 나돌았던 윤 고문으로서는 스스로 밝혔듯 거취를 염두에 둬온 터라, 같은 세대로 생각하는 이건희 회장, 이학수 전략기획실장(부회장)이 물러난 것이 퇴진을 결심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의 퇴진 결정이 타의 반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은 삼성그룹의 후계 구도가 완결되지 않았다는 상황에서 말미암았다. 이건희 회장이나 이학수 실장으로서는 어차피 지금은 과도 체제를 꾸릴 수밖에 없는데 윤 고문은 부담스러운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과도 체제의 사령탑은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보다는 무난하고 합리적인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번 인사가 예전과 달리 그룹에서 발표하지 않고 계열사별로 진행되는 형식을 띠었다지만, 이 회장의 의중이 인사 내용에 크게 반영되었다는 것은 삼성 측도 부인하지 않는다.

이로써 삼성그룹에는 이건희`이학수`윤종용으로 대표되는 삼성의 2세대 경영진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졌다. 지난 20년간 이건희 회장을 구심점으로 삼성을 이끌어온 세대가 후선으로 물러앉은 것이다. 물론 이 회장은 최대 주주 자격으로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겠지만, 삼성전자의 공식 경영자는 윤 고문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윤우 부회장이다. 이로써 삼성에서는 3세대 이재용 전무가 바통을 이어받기 전 ‘2.5세대’ 격인 과도체제가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대대적 인적 쇄신과 사업구조 재구축으로 표현되는 경영혁신 작업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윤 고문은 자신의 퇴진을 경영혁신 작업의 시작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그가 가장 앞세운 퇴진 사유도 “지금이 위로부터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다. 사실 경영혁신은 윤 고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가 외국 언론으로부터 얻은 별명은 ‘미스터 크라이시스’ ‘카오스 메이커’였다. 끊임없이 위기를 부르짖으며 임직원을 독려해오고 ‘혼돈’(혁신)을 주장해온 ‘경영혁신 전도사’였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말을 듣지 못했다면 삼성맨이 아니다. “경영자는 ‘조직이 내일이라도 당장 망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으로 항상 긴장해야 한다. 맞닥뜨릴 수 있는 위기상황과 문제들을 분명히 알고 조직 전체가 확실히 인식하도록 해야 하며 그 위기감이 지속되도록 해야 한다. 기업 경영은 혁신의 연속이며 혁신은 고통을 극복하는 인내력을 요구한다.”
 

아름다운 퇴장이 평소 지론이라는 윤종용 상임고문(위)은 ‘포스트 윤종용’ 시대를 열었다.ⓒ삼성전자 제공

 

19년차 CEO가 쓴 샐러리맨 성공신화

윤 고문은 이른바 오너 경영자가 아닌 전문 경영자 가운데는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총수-전략기획실-전문경영인’이라는 삼성 발전의 삼각 축 가운데 한 축을 담당하는 상징적 존재였다. 12년째 이끌어온 삼성전자를 세계적인 기업 반열에 올렸다. 가전에 이어 반도체와 휴대전화로 이어지는 삼성전자의 성공 신화 역시 그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신경영’의 주창자가 이건희 회장이라면, 윤 고문은 신경영의 강력한 실행자였다. 실행자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주창자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위기경영의 달인답게 외환위기 당시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진두 지휘해 거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의 기틀을 다진 것은 그의 대표 치적에 속한다. 경영 실적도 눈부시다. 재임 기간 삼성전자의 매출은 18조원(1997년)에서 98조원(2007년)으로 5배 이상 늘어났다.

그에게는 ‘혁신 전도사’ ‘경영의 달인’ ‘가장 닮고 싶은 최고 경영자’ ‘대한민국 대표 CEO’ 같은 화려한 수식어가 붙지만, 그가 1966년에 사원으로 입사해 1997년 대표이사 부회장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40여 년에 걸쳐 ‘월급쟁이’로 지내온 윤 고문은 2006년 한 달 월급이 21억원을 넘었다. 이쯤 되면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샐러리맨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국내 대기업 전문 경영인 가운데 최장수 기록도 남겼다. 그가 최고 경영자가 된 것은 18년 전인 1990년이었다(삼성전자 가전부문 대표).

〈초일류로 가는 생각〉에 담긴 경영철학

경영학자들이 주목할 만큼 그는 자기의 경영 철학을 완성한 흔치 않은 경영자이기도 하다. 그는 2004년 자신의 경영 철학을 담은 〈초일류로 가는 생각〉을 펴냈다. 사내 임원진에 한정해 배포했지만,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미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초일류(기업으)로 가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크게 세 부문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그의 역사와 시대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기업가로서의 책임감을 엿볼 수 있다.

“구성원에게 변화의 방향과 비전을 명확히 제시할 수 있고 목표를 향해 한 방향으로 일사불란하게 끌고 갈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리더십을 갖기 위해 경영자는 인격과 인품, 특히 정직함과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라거나 “혁신에는 반드시 희생이 따른다. 희생으로 인한 고통을 최고 책임자가 고독하게 감수하고 인내해야 한다” 등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기업 경영은 경영자원과 경영프로세스의 관리이며 혁신의 연속이다”라고 강조하는 그는 디지털 시대에 중요한 경영자원은 사람, 기술, 돈, 정보, 시간 가운데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꼽는 경영자이기도 하다.

1990년대 말 이후 ‘디지털시대’의 삼성전자를 이끌었던 윤 고문은 “미래를 예측하기보다 창조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42년간 삼성은 내 인생 모든 것이자 그 자체였다”라는 그는 그 모든 것이라는 곳에 ‘포스트 윤종용 시대’를 활짝 열어놓았다. 최근까지 월례사에서 그가 “고객중심 혁신, 마케팅·디자인의 가치 혁신을 해야 한다. 위기의식을 갖고 바뀌어야 산다”라고 강조한 것은 이제 그의 후임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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