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전쟁이 날로 격화하며 한국이 두 나라 가운데 누구 손을 잡아야 할지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경제 발전 성과를 권력 강화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중국과 이를 놓고 동맹국과 연합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이 정치·경제 등 각 분야에서 사사건건 충돌하며 우리 정부가 내건 '전략적 모호성'은 발붙일 곳이 없어졌다. 특히 최근 미국이 자국 군사정보 동맹(파이브 아이즈)에 한국을 넣는 방안을 추진하자 중국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는 등 한국을 둘러싼 미·중 신경전이 더 고조되고 있다.
내년 한중 수교 30주년을 앞두고 신흥 강대국과 종전 패권국이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한국이 덩달아 빠진 모양새다.
이에 매일경제는 격화하는 미·중 관계 속 한국의 생존전략을 찾기 위해 지난달 25일 서울 역삼동 니어재단에서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주재우 경희대 국제정치학 교수, 왕윤종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 등 중국 전문가 3인과 긴급 좌담회를 가졌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정치, 경제 등 사안별로 국익에 맞는 뚜렷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면서도 "경제 부문에서는 중국과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는 반도체, 바이오 부문 전략자산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중 패권경쟁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정덕구 이사장=2010년 이전까지 한국과 중국은 서로에게 필요한 나라였다. 중국은 우선 먹고사는 게 급하니 한미 동맹, 한·미·일 공조, 한중 경제 공존체제를 수용했다. 하지만 2010년 들어 국력이 커지면서 중국이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 중국의 국제사회 위치가 달라지면서 한국이 그동안의 한중 관계 틀을 바꿔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다. 종전 한중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면 한국이 궁지에 몰릴 수 있다.
▷주재우 교수=중국의 현실과 실체를 꿰뚫어 봤어야 했는데 그동안 그렇지 못했던 측면이 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반도 통일과 비핵화 과정에서 중국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이게 중국이 강압적이고 고압적으로 나오도록 하는 빌미를 제공하며 우리 발목을 잡고 있다. 이 같은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은 만만치 않은 경제 역량을 갖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선진 한국 프레임에서 계속 성장해왔다. 이들은 현재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하는 외교를 보면서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한국이 대비해야 할 부분은.
▷왕윤종 교수=2010년만 해도 배터리 부문 최강은 LG였다. 지금 배터리 세계 1등은 중국의 CATL이다. 중국이 추격하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만만하게 생각했던 면이 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오히려 한국과 미국이 중국을 과대평가하고 있다. 과대평가하다 보니 공포가 생긴다. 중국을 똑바로 봐야 한다. 현재 중국의 약점은 지구촌 공급망이다. 지금 미국 조 바이든 정부가 동맹국과 연합해 핵심 기술의 세계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범용 제품은 놔두고 중국이 가장 취약한 공급망을 틀어막겠다는 전략이다.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많은 부분이다. 공급망 관리를 잘 못하면 국가적 위기가 올 수 있다. 코로나19 국면 이전에는 기업들이 재고를 최대한 줄이며 비용을 절감하는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 방식을 채택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비용이 들더라도 공급 안정성을 높이는 '저스트 인 케이스(Just in case)' 방식이 필요하다. 중국이 아쉬워할 만한 전략자산도 키워야 한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쌓아야 하는 전략자산은 무엇인가.
▷정 이사장=규모로 중국과 싸운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핵심부품, 원천기술, 틈새시장으로 가야 한다. 앞으로 키워야 할 전략자산은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 유전공학과 나노기술이 융합된 바이오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모더나 백신을 위탁 생산하고, 셀트리온이 발전된 복제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분야는 미국과 동맹하며 발전시켜야 한다.
▷왕 교수=모든 부문에서 우리가 다 1등 할 필요는 없다. 한국이 2~3등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세계 '빅3' 안에만 들어가도록 유지하면 수익성은 확보된다. 배터리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는 한국이 2~3등 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되는 분야다.
―미국이 쿼드(미국·일본 등 안보협의체) 등을 통해 중국 견제에 나섰다. 한국이 쿼드에 참여해야 하는가.
▷정 이사장=공식적으로 쿼드에 가입하는 순간 한국은 중국의 적국이 되는 거다. 쿼드는 중국을 견제하는 기술동맹으로 갈 공산이 크다. 성급히 참여하지 말고 궁극적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기고 검토해야 한다.
▷주 교수=쿼드는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쿼드기술네트워크(QTN)를 출범시켰다. 어차피 QTN에 참여해 기술력을 공유한다고 해도 쿼드 참여국들이 한국에 정치적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쿼드 참여는 전략적으로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중국의 대외 팽창정책인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에 대항해 미국은 B3W(Build Back Better for the World) 을 내걸었다. 어디에 참여해야 하나.
▷왕 교수=정확히 말하자면 중국은 한국에 일대일로 참여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한국이 일대일로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중국에 요구해왔다. 현 정부가 신남방정책을 통해 중국과 공동 진출을 타진했지만 이뤄진 게 단 한 건도 없다. 중국 입장에서는 한국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이 참가했던 지난 6월 주요 7개국(G7) 회의에서 미국 등 G7은 저개발국 인프라스트럭처 개발 등을 담은 B3W 구상을 내놨다. 당연히 B3W에 들어가야 한다. 적극적으로 개발 인프라스트럭처 사업에 참여해 수익을 거둬야 한다.
―미·중 갈등이 첨예해지며 국지전으로까지 발전할 가능성은 없나.
▷정 이사장=군사충돌까지 가기에는 각기 국내 사정이 급박하고 힘들다. 전쟁을 일으킬 여유는 없다. 내부적으로 각국에 어떻게든 무력충돌은 안 하려고 하는 억지력이 존재한다. 특히 코로나19 상황 등까지 겹치며 지금 전쟁을 바라는 나라는 없다.
▷주 교수=공감한다. 미·중은 한국전쟁 이후로 직접적인 무력충돌을 피하려고 물밑 접촉을 많이 해왔다.
―미·중 관계를 체계적으로 진단하기 위해 국가안보회의(NSC) 체제를 바꿀 필요는 없나.
▷정 이사장=NSC는 상충적, 모순적인 상황을 놓고 토론하는 중요한 모임이다. 대통령에게 '아닌 건 아니다'고 해야 하는데 먼저 대통령 의중을 살핀다는 게 문제다. 특히 5년마다 정권이 바뀌면 외교 노선이 바뀌고 국익 계산 방법도 다 바뀐다. 이렇다 보니 한국 외교에는 신뢰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폴리페서를 비롯해 대선 선거 캠프에 있던 사람들이 대거 요직에 들어가다 보니 전문가들이 전문적으로 얘기할 기회가 없다. NSC에서 다루는 문제는 정치 이념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대선 캠프에 있었던 사람은 빼고 철저히 각계 전문가들로만 구성해 상황을 분석하고 위험을 헤징(회피)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주 교수=공감한다. 미국 NSC에서는 대통령이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이슈를 챙기지 않는다. 참모들이 우선순위를 정해 전략회의를 거치고, 난상토론한 최종 보고서가 차관급 회의에서 채택된다. 또 한국은 주로 군사, 통일안보에만 NSC 초점이 맞춰졌다. 앞으로는 우리 국익과 관련한 기후변화, 경제, 과학기술, 보건 부문까지 NSC가 다루는 범위를 넓혀가야 한다.
▶▶ 中 전문가 3인은…
정덕구 이사장(73)은 고려대 상학과와 미국 위스콘신대 경영학 석사를 거친 국제문제 전문가다.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한 후 중국 베이징대 초빙교수 를 지냈다. 왕윤종 교수(59)는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SK 중국 경영경제연구소 소장 등을 거친 국제경제통이다. 주재우 교수(54)는 베이징대에서 국제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무역협회 무역연구소 연구위원, 국가안보정책연구소 연구위원 등을 역임한 외교안보 전문가다.
"G2 패권전쟁 치열하지만,팍스 시니카 회의적" [Big Picture]
중국이 미국 GDP 추월해도
외교력·달러 기축통화 같은
美국력까지 뒤집기는 역부족
이번 대담에 참여한 중국 전문가들은 '팍스 시니카'(중국 중심의 세계 경제질서) 시대가 올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향후 10년 안에 중국 경제력이 미국을 뛰어넘어 팍스 시니카 시대가 올 것이라는 일각의 전망과는 사뭇 다른 평가다.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 전 주석이 개혁·개방 위주 성장을 선언할 때만 해도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의 10%에도 못 미쳤지만 지난해 72%까지 추격했다. 시장에서는 6~10년 안에 중국이 미국 GDP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길게 보면 중국이 한 발짝씩 미국을 추격하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면서도 "중국이 GDP 면에서 미국을 능가한다고 해서 전 세계 네트워크와 기축통화 장악력까지 뒤집기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팍스 시니카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치적 구호"라며 "중국이 체제를 바꾸지 않는 이상 미국을 능가하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특히 민간 부문 창의와 혁신 의지 없이는 미국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왕윤종 동덕여대 교수는 "경제를 총량으로 보고 팍스 시니카라고 이름 붙이는 건 의미가 없다"며 "결국 중요한 건 전 세계를 이끌 수 있는 과학기술, 외교능력 등 국력"이라고 평가했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도 "중국이 말하는 중화질서는 세계 문명에 어필할 수 있는 가치가 없다"며 "인류문명 공동체 가치가 결여됐기 때문에 국제사회에 어필이 안 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 교수는 "문명적, 군사적, 경제적 접근에서 모두 팍스 시니카에 접근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부상으로 한국 내부에서 급증하는 반중 정서 관리 필요성도 역설했다. 정 이사장은 "동북아시아 3국 정치에서 대외정책으로 연결되는 고리 중 하나가 민족주의"라며 "시 주석 역시 민족주의를 부추겨서 통치 기반으로 삼으려 한다"고 운을 뗐다. 그는 "반중 정서를 정권이 부추겨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반중 정서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도록 정치적으로 나름의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왕 교수는 "우리 국민들은 똑똑해서 무턱대고 반중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공공외교를 중국과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한데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는 내년이 미래 지향적 관계 설정을 위해 중요한 해가 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주 교수는 "반중 정서를 역으로 해석하면 국민들이 대중국 외교에 대한 실망을 표출하는 것"이라며 "현안에 대해 중국에 항의도 못 하고 국민 의사도 전달하지 못하고 해결되는 것도 없다는 실망감"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ceocoaching > 글로벌중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GBC 글로벌 경제인 클럽(+린다리회장) (0) | 2022.01.26 |
---|---|
중국상해.한국부동산 전문가,분양의 여왕 린다리 한국에서의2022년 재도전 스토리(+저서 명강사 25시) (0) | 2022.01.15 |
중국관시로 맺어진 린다와의 비즈니스 9년 만남은 기적(+2013년 심천CEO 강의) (0) | 2021.11.24 |
월간 10억 사용자 틱톡,미.중 대립불구하고(MZ 사이에서 큰 인기) (0) | 2021.09.29 |
투자대가 조지소로스의 글로벌 경제 통찰,中 위험에 시진핑 독재원인(+젊은 사업가들 강제기부 황금알 사업권 박탈 빅테크길들이기) (0) | 2021.08.16 |
댓글